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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년 6월 21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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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5 오후 5:40:44
"참된 삶"                마태복음 6장 1~18절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도록 그들 앞에서 너희의 의를 행치 않도록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잘못된 동기로 옳은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종교에 가장 중요한 선을 행하고 의롭게 되는 것과 기도와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6장 2절에서 선한 행위를 외식으로 하는 종교를 극장 형식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선행과 구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동기가 더욱 중요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것과 가난한 자를 도우는 것과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교회에 봉사하는 것은 선하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선행의 보여지는 외적인 것보다 먼저 내적인 동기를 보십니다. 사람이 자기의 영광을 가지려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 칭송을 받으려고 선행을 행한다면 가식적 경건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것은 옳고 바른 일을 잘못된 동기로 하는 극장식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6장에서 잘못된 동기로 하는 둘째 예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외식적인 사람들이 하는 기도에서 범하는 죄에 대해 두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첫째, 많은 기도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가 동기가 된 기도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정한 시간을 두고 열여덟번 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회당을 찾아 가거나 시장이나 길 모퉁이를 찾아가서 경건하게 기도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의와 경건을 보여주려는데 그 동기가 있으며 칭송받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바른 일을 나쁜 동기를 가지고 행하였던 것입니다. 즉 극장 형식의 종교입니다.

둘째, 공허한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공허한 기도란 내용이나 의미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서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남을 위한 보여주기 위한 형식의 기도로 하나님은 그 동기를 먼저 알고 계십니다. 또 예수께서는 금식에 대하여 그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은밀한 중에 보여주어야 하나 유대인들은 외식적으로 음식과 물로 얼굴을 씼는 것 목욕하는 것 수염과 머리를 깎고 다듬는 것 심지어는 신발까지 신지 않고 자기가 금식하고 있다는 표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금식의 기색을 보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씼고 슬픈 표정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선행과 금식은 자기의 동기가 채어졌고 만족되어 보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는 상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장식 종교를 극복할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극장식 종교는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없고 하늘나라의 영광에 그 분깃을 나누지도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의 교훈에 따라 그것을 극복하고 버려야 하나님이 들으시고 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4절에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선을 행하며 기도하고 금식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같이 참여 하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를 의식하지 않고 선을 행하며 기도하며 금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자기를 의식치 않고 하나님 만을 의식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신다는 의식만이 극장식 종교를 파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맞추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 실감하게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듣고 계시는 하나님, 선행을 보시고 있는 하나님, 금식에 함께 참여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 우리의 모든 삶에서 극장식 종교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극장식 종교와 외식적인 삶은 우리를 지옥의 자식으로 만듭니다. 이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의식과 동기를 가지고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 가도록 우리 모두 노력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