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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6년 3월 27일 부활절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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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7 오후 1:20:33
부활 신앙 (고린도전서 15장 1~11)



플라톤의 대화록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릴 동안 많은 제자들이 찾아가서 대화로 그에게 얻은 가르침과 지혜의 기록입니다.

그중에서도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는 자연이 죽음과 죽음후의 세계 문제가 주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대화중 그들이 얻은 결론은 이 세상에서는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어떤 확실한 것을 얻을 수 없으며 사람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최선의 생각을 취하고 그 생각을 가지고 인생의 항해에 땟목같이 떠 다닐 수 밖에 없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더구나 이 항해는 위험하나 사람들이 신으로부터 더 확실하고 안전하게 항해 할 수 있게 하는 말을 듣기 전에 다른 선택이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죽음의 대화에 모였던 모든 철학자들은 신의 확실한 음성을 듣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듣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 증거를 보여 줍니다.

죽어서 장사 지내고 묻혔던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였다는 증거와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신을 입어 그리스도(메시아)로 오심은 인류와 우리의 인생에 대단히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를 통하여 그의 음성을 듣고 걸어 가며 그의 뜻과 목표를 이뤄가는,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실천하고 살아가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칭송하여야 합니다. 인류가 수천년동안 고대 하였던 메시아가 와서 우리에게 말씀(Logos)과  음성(성령)으로 우리가 변화 되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고자 하나 많은 사람이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배척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돈과 명예는 잃어도 안타까움으로 끝나며 심지어 건강을 잃어 육신의 죽음이 왔다해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끝나지만 소크라테스와 많은 제자들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 실제적인 고통과 상실이 있게 되니 메시아의 음성을 듣는 것은 무엇과 비교될 수 없는 중요하고도 중요한 결정과 그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이 지상에 그리스도로 오셔서 살았고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과 고뇌로 죽으신 것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일만에 무덤에서 일어나 영생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승천하였다는 것은 믿고 인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간의 몸으로 즉 인자로 오심과 부활은 오래전부터 성경에 예언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예언되어 있는 사실을 누가복음 21장 25~27절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눈으로 직접 경험한 증언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도 시편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보내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시편68:18절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고난 받으심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예언을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실제로 눈으로 본 증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베드로가 보았고 또 모든 다른 제자에게도 보였고 또 한 장소 한 때에 500명의 형제에게 보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에 그 중 많은 증인이 살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당시도 바울의 고린도서를 읽고 바울과 증인들에게 질문하고 조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그의 형제 야고보가 만났고 이 당시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지도 않았고 그의 부활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부활을 보고 나서 야고보와 그의 가족이 메시아와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활의 증거를 듣고 그 마음에 믿음이 있어 부활의 신앙으로 자신이 변화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울 사도의 변화된 삶과 그의 희생적 사역입니다.

이렇게 부활로 변화된 삶과 인격을 보여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는 오늘 본문 9절에서 그의 과거에 대하여 말하고 10절에서는 그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에 대하여 말하며 그리고 그는 변화된 삶을 말합니다. (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핵심적으로 말하면 당신은 내가 전에 어떠했는지 알고 있고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고 나서 지금은 어떤 변화를 받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확신과 그 능력을 내가 바로 증거이다 라고 말합니다.

오늘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또한 메시아로 말미암아 우리도 죽음에서 승리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 승리하고 고난의 인생에 승리하고 특히 죽음에 승리합니다.

부활은 승리이기 때문에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의미에 대하여 충분히 심사숙고를 하여 죽음에서 승리한 기쁨과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부활을 오감으로 보고 경험하여도 그 부활이 나의 것이 되지 않아서 베드로와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가서 어부로 고기를 잡자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14절을 보면 그들은 그 밤에 한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밤은 예수님이 없는 밤입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예수께서 해변가에 서 계시면서 보트의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르니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예수 없는 밤과 예수님이 계신 아침 햇살속의 가르침과 지시 그리고 밤새도록 빈배와 배에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의 어획이 대조를 이룹니다. 그 다음 그리스도가 준비한 식사에로 초대됨과 부활후 세번째 자신을 보여주며 세번이나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물으셨던것과 내 양을 치라는 세번의 명령이 제자들을 부활의 체험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져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부활의 종국은 사람(자신을 포함하여)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