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문과 두 길 ( 마태복음 7장 13 ~ 14 )
인생은 선택이라고 합니다. 아담 이브의 선악과의 선택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선택까지 우리도 선택의 문제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우리 앞에 두 문과 두 길이 있으며 그것의 선택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넓은 문과 평탄한 길, 그리고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이 우리 앞에 선택을 기다리고 있으며, 넓은 문과 평탄한 길은 파멸 즉 지옥으로 인도하며 좁고 험한 길은 생명 즉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축복으로 인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좁고 험한 길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실상은 넗고 평탄한 길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며 좁고 험한 길을 선택하여 걷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고 경고합니다. 좁다는 뜻은 엄중하고 까다롭고 곤경이 많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목표를 달성 하려고 하면 엄중하게 행하고 곤경을 극복 하여야만 그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자기 인생의 사명을 목표인 십작가의 죽음에 두고 그것을 위해 좁은 문을 지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좁고 험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서 그 종점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명을 완수 하기까지에는 처음부터 사탄이 그 좁은 문을 피하고 넓고 평탄한 길을 편안하게 걸어가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물질로 세상축복으로 자기 영광으로 걸어가라고 요구하였으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말씀으로 끝까지 걸어가서 골고다에 도달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삶의 길을 보여 주시면서 우리에게도 좁은 문을 선택하여 협착한 길을 걸어가라고 초청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려면 또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려면 좁은 문을 선택하여 협착한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나님이 주신 목표에 도달합니다.
그렇다면 좁은 문과 협착한 길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살펴봅시다.
첫째,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 부인의 반대 뜻은 자기 탐닉입니다. 자기 편리대로 자기 이익이 되는 대로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아무런 절제도 없이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찾지 않고 내 자신이 내가 원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이 자기 탐닉입니다. 최상의 목적과 목표를 앞에 두고 엄중한 마음으로 절제와 근면으로 자기를 훈련하고 힘써 나아가는 자기 부인이 없이는 험하고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둘째, 십자가를 지는 것이 좁은 문의 선택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이고 동시에 사명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죽음을 전제로 하여 받았습니다. 이 생명이 죽음을 지고 걸어가서 십자가 위에서 죽을 때에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영생과 하늘나라의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 죽음을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걷는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죽음을 지고 생명의 길로 걸어가는 길이 좁은 문입니다.
셋째, 좁은 길은 희생과 포기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누구와 함께 들어갈 수 없는 오직 혼자만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좁은 문이며 또한 협착한 길은 아무것도 가지고 걸어갈 수 없는 험한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과 야고보는 부모와 일꾼 그리고 그물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갔습니다. 세리 마태도 세관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의 부름을 듣고 바로 세관을 떠나서 세리가 아닌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라 좁은 길로 가기위해서는 방해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과감히 뒤에 버려두고 가야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선택한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넷째, 죽음의 현장에서 떠나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좁은 길은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장례를 지내고 나서 따르겠다는 제자에게 죽은 자가 장례하도록 하고 너는 그곳을 떠나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현장과 특권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고 또 그것은 생명이 없는 죽음의 현장입니다. 부자 청년같이 소유가 많으면 더욱 근심이 많아서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소유를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희생과 삶의 현장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좁은 문입니다.
다섯째, 좁은문은 사탄과의 계속적인 싸움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계속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 싸움하신 것 같이 우리도 계속하여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에 승리하려면 영적인 전신 갑주를 갖추어야 합니다. 전신갑주를 갖추고 나서 전쟁에 나아가야 이길 수 있듯이 사탄하고의 영적 싸움에도 영적인 준비가 먼저 되어서 싸워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영적인 준비와 싸움은 쉽지 않은 험한 길이고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로움의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즉 하나님 말씀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크리스천의 삶은 좁고 험하나 예수님은 진정한 삶의 기쁨과 생명은 자기 부정의 좁은 길에 있으며 자기 탐닉은 파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경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좁은 길로 초청하십니다. 이 초청은 좁은 문과 험한 길을 복음은 있으라고 초청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 길을 걸으라고 하는 나를 따르라고 하는 초청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 물을 주십시오 내가 다시 목마르지 않도록’ 하면서 구할 때 즉 예수님의 초청을 자기 스스로 받아들일 때에 예수님의 생수를 마실 수 있게 됩니다. 갈릴리 바다에 빠질 때에 주님 나를 구해주십시오 라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능력에 호소할 때 예수께서 건져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예수 외에는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함께하지도 않고 스스로 혼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한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과 교툥 하여야만 예수님과 내가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듯 크리스천의 첫 걸음은 로마서 3장 23절에 말씀하신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또 메시아로 영접하여야만 합니다. 즉 대속의 죽음을 인정하고 그리고 나서 십자가의 죽음과 십자가를 지고 걷는 것은 그 다음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나에게 임하여 나의 생각과 마음에 교통하여 나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지와 정과 의의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으로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뜻을 바치지 않으면 구원의 길인 좁은 문을 걷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좁은 길로의 초청에 십자가를 알고 마음의 문을 열어서 그 길로 걸어가는 뜻을 행함으로서 구원의 완성인 십자가의 죽음 맞이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