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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2015년 11월 4일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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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 오후 5:13:18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디모데전서 5장 1-6절)


 
디모데전서 5장 1절에서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향락’이라 번역된 그 원래의 뜻은 감각적으로 사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자기자신에게 빠져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또 ‘좋아하는 자’라고 번역된 것은 그것을 위하여 또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방탕과 낭비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두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뜻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과 영적 생명을 하나님의 뜻을 목적으로 해서 찾아 살아가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살아가서 자기에게 빠져 방탕하고 향락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 삶은 죽은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순수한 세상의 기쁨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순수한 즐거움이 사람들에 의해서 악용 되거나 오용되어서 즐거움이 조잡하거나 육신적이 되어서 그 즐거움이 바로 죄가 되는 향락까지 가게 되었기 때문에 본문에서 향락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그 사회에서도 향락의 즐거움이 죄가 된다고 했다면 현대의 향락주의와 물질주의가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뜻을 밀어내고 향락으로 그 하나님의 자리에 향락이 군림하여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즐기고 즐거우면 모든 것이 정당하고 그것의 추구가 사회의 로망이 되어 있습니다. 즐거움과 향락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육신은 살았으나 영혼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즐거움 속에서 살고 즐거움을 위하여 사는 죽은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향락을 위해 사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은 죽은 몸이 활동력이 없는 것 같이 그 영혼이 활동력이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향한 생각과 사랑에 활동력이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걸어가는 그 걸음에 활력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생각하는 마음의 활동력이 없으며, 본능은 살았으나 눈은 밝은 것을 보지 못하고 음성은 듣고 있으나 깨닫지 못하며, 마음속에 생명의 활동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마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과 같습니다. 일시적인 즐거움과 향락이 있으나 무덤 위에서 끝나는 죽음만 있을 뿐입니다.

둘째, 향락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감각이 없는 것 같이 영혼에도 감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외부적인 생명의 표징밖에 없으며 내적인 영혼은 무감각하게 죽어 있습니다. 죽은 영혼은 종교의 위대한 실상에 대하여 무감각 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창조를 보지도 못합니다. 향락을 위하여 사는 삶은 영혼이 죽은 사람으로 마치 교회 묘지에 묻혀 있는 시체와 같습니다. 육체는 살아서 교회 안에 있으나 영혼은 무덤 속에 있기 때문에 찬송가나 말씀이 울려 퍼지지만 듣지 못하고 거기에 참여 하지도 못합니다. 영혼의 감각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향락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죽은 시체가 곧 부패하게 되듯이 죽은 영혼도 계속하여 부패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을 보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의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였습니다. 살아있는 육신이 아무리 바쁘게 움직이더라도 거듭나지 못하여 향락만을 위해서 살면 그 영혼은 계속하여 썩어가고 있습니다. 향락은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때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중생의 체험을 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살아가고 있으며 또 나를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 삶은 예수님의 제자로써 자기를 먼저 부인함으로써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자기를 먼저 부정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의 즐거움, 자기 자신에 몰두하면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육체의 생명으로 살았다거나 죽었다고 구별하지 않고 영이 죽었으면 죽은 사람이고 영이 살았으면 살아 있는 사람으로 두 종류로 사람으로만 구분하여 보았습니다.

영이 죽었거나 또 영이 살아있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에게 빠져 자기의 즐거움과 향락을 위해서 살면 그 영이 죽게 되고 하나님을 향하여 걸어가면서 자기를 부인하면 그 영이 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헌신하고 그의 뜻에 복종하여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가르침에 헌신하고 예수님이 나의 나 됨의 바탕이 되고 예수님의 가르침(계명)이 나를 통치하여 예수님이 나의 최고 가치가 되어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나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나의 즐거움과 나의 향락이 내 인생의 주된 목표이며 그것이 나를 이끌어 가는 동기와 주제가 되면 그 영혼은 틀림없이 죽은 영혼 입니다.

지금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면 이 세상에서 무엇이 최고이고 무엇이 나의 주인이며 무엇이 나를 이끌어 가는 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질주의의 돈과 나의 즐거움인 향락이 모든 사람의 모든 일을 이끌어 가고 있는 그 현실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 새겨 보고 진정 살아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