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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2015년 11월 1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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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 오후 5:08:51
물질주의 메니아 ( Mania of materialism )



마태복음 6장 19-24절



물질주의가 우리의 영적 생명에 주는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가 전 인류가 구원 받도록 계획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사람을 끝까지 하나님께 데리고 가기를 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었으나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을 구세주로 영접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다른 무엇도 특히 물질과 소유를 주(Lord)로 삼는 사람은 구원의 길에 들어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질과 소유에 대한 탐욕을 우상이라고 불렀습니다. 물질과 소유를 주님으로 삼는 우상숭배에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만 그 구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제자 즉, 제자의 도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6장24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먼저 부인하고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와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제자가 되어 예수를 따르려면 그 첫째 관문이 자기를 부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십자가를 알 수도 없고 질 수도 없으며 더욱이 예수를 따라 갈 수도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그것은 바로 물질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6장24절을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 즉 하나님과 맘몬을 같이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맘몬의 원 뜻은 은행계좌에 안전하게 많은 돈을 위탁하여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 계좌에 물질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에 따라 그것을 더욱 신뢰하고 의존하게 됩니다. 맘몬은 물질을 쌓아서 그것에 의존하고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이브가 타락한 후 사람들이 항상 직면하는 기본적인 씨름은 물질과 영의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영성과 물질주의 하늘의 일들과 세상적인 일, 그리고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 영원함과 현세주의의 씨름입니다. 인생의 주된 또한 첫째되는 목적이 물질의 소유에 두고서 계속하여 물질을 축적하려는 습관이 우리들이 극복하여야 할 물질주의인 것입니다. 이렇게 쌓아둔 물질이 즉 물질주의적인 일들이 나의 인생과 삶 그리고 영적 생명을 주장하여 그것이 나의 주님이 되고 그것이 나의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물질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결정적인 영향을 세가지로 살펴보면

첫째, 물질주의는 사람의 애증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21절에서 내 보물 즉, 자기의 귀한 것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사람의 마음이 그가 탐내는 일에만 몰두하고 물질을   소유 하는데 만 많은 시간을 쓰게 되면 그의 애증이 그가 구하는 그 일들에게 지배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일들만 하기를 원합니다.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물질 그 이상의 어떤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러한 물질주의적 생명이 더 나아 가게 되면 그 물질이 단순한 변화의 한 과정이고 일시적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애증이 물질주의에 지배당하게 되면 하늘에 보물을 쌓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의 의지가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좌우되게 되면 하늘에 대한 일들에 대해서는 모든 흥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크리스천은 이 지상에서 행하여지는 사랑과 친절의 행위로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고 무엇이 되었느냐에 따라 그 상급을 받습니다. 지상의 삶에서 사랑과 친절을 행함으로써 그것으로 자신이 변화되어 그것으로 상급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물질과 소유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물질주의는 사람의 영적 통찰에 영향을 주어 그것을 흐리게 합니다. 마태복음 6장23절에서 내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냐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능력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물질주의적인 일들에 영향을 받고 지배를 당하고 있으면 그의 영적인 이해와 영적인 통찰력이 같이 영향을 받아 흐려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에 더하여 더욱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자기의 영적 어두움을 즉, 선과 악, 옳고 그름의 판단력이 흐려져서 자기 판단이 잘못된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일들이 실제로는 어둠인데도 자기는 빛으로 여기게 됩니다. 예수께서 눈이 몸의 빛과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눈이 하나님께 초점이 있으면 몸은 빛으로 가득차게 되며 그와 반대로 눈이 두 개의 초점을 가지게 되면 몸에 어둠이 가득 차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두 개의 초점으로 또 두 개의 영상으로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 물질주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보다 물질주의에 지배당하게 되고 또한 우리의 영은 어두움에 가득차게 되어 옳고 그름, 선과 악, 의로움과 불의를 구별하는 능력마저 없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눈이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않고 물질을 동시에 바라보면 영적 통찰력이 흐려지고 말씀의 이해가 부족하게 되어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생명이 죽었다고 부릅니다.

셋째, 물질주의는 사람의 의지를 지배합니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 육신은 물질에 쉽게 유혹되어 지배 당하게 됩니다. 영적인 일보다 물질적인 일이 그리고 미래의 하나님 나라보다 현재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에 더 유혹되어 그것에 자기의 의지를 맡기기 쉽습니다. 물질이 나의 의지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자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물질의 지배를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물질에 더 집착되기 쉽고 영원한 시간보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에 좌우되기 쉬우며 그렇기 때문에 물질은 일시적인 현상인 것으로 지나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앞의 전망을 바로 보게 되면 물질적인 것의 일시적 현상과 사라지는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바로 알게 됩니다. 이러한 자각에서 물질 혹은 나를 지배하는 세상의 일들을 극복함으로써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십자가를 볼 수 있고 또한 자기의 십자가를 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를 따라 가야만 제자가 되며 이러한 제자의 길이 구원의 길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물질주의를 극복함으로써 자기를 부인하고 각자의 십자가를 집시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우리도 한 걸음 한 걸음 같은 걸음으로 따라가서 하늘나라로 나아가는 축복된 삶을 살아 갑시다.